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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영어 침묵기', 불안해하지 마세요. 가장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입니다

jinyjina 2025. 8. 8.

아이의 '영어 침묵기', 불안해하지 마세요. 가장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

20년 경험으로 깨달은, 기다림의 미학에 대하여

아이와 함께 매일 영어책을 읽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영상을 보며 웃던 날들이 몇 달째 이어집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이렇게 많이 들었는데, 왜 우리 아이는 영어로 한마디도 하지 않을까?"

제 방법이 틀렸을까, 우리 아이만 유독 늦는 건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잠 못 이루던 밤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수십 권의 육아서를 뒤적이고, 저보다 앞서간 선배맘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애태우던 그 시간들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아이의 영어 나무가 땅속 가장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단단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엄마표 영어라는 긴 길 위에서 아이의 '침묵기'를 마주한 부모님들께, 저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의 머릿속은 '언어 항아리'와 같습니다.

언어항아리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은, 텅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 영어책 한 권, 영어 노래 한 곡이라는 물을 아이의 머릿속 항아리에 부어주고 있는 셈이죠.

물이 항아리에 반쯤 찼을 때, 밖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아리 안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소리와 억양, 단어와 문장들이 서로 섞이고 연결되며 자신만의 질서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집중력 있게 영어를 '흡수'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차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순간, 아이의 입에서는 놀라운 문장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둘째, 부모의 역할은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거 영어로 뭐야?" "Apple, 따라 해봐."

우리가 조급한 마음에 던지는 이런 질문들은, 아직 물이 반밖에 차지 않은 항아리를 억지로 뒤집어 물을 쏟아내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압박감을 느끼고,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관'이 아니라 '정원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아이라는 씨앗이 스스로 뿌리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햇살과 바람과 같은 '영어 환경'을 꾸준히 제공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유창하지 않은 발음이어도 괜찮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엄마의 목소리로 꾸준히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비옥한 토양이 되어줄 겁니다.

셋째, '결과'가 아닌 '과정'을 믿으세요.

'결과'가 아닌 '과정'을 믿으세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 습득의 과정은 눈금으로 잴 수 없습니다.

오늘 아이가 새로운 단어를 말하지 않았더라도, 영어책을 가져와 엄마 무릎에 앉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영상 속 주인공의 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면, 아이는 이미 영어와 깊이 교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과정들을 믿어주세요. 결과는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찾아올 테니까요.

아이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마음은 불안이라는 그림자로 채워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땅 위의 나무가 화려할수록, 땅속의 뿌리는 더 깊고 넓게 뻗어있다는 사실을요.

지금은 우리 아이의 영어 뿌리가 가장 단단해지는 시간입니다. 조급해하지 마시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아이의 곁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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